2009년 10월 09일
늦봄! 드디어
늦봄 첫앨범
I. 늦음 그러나 너무 늦지 않음 late, but not too late
첫앨범이다. 밴드다. 모든 맴버가 노래에 참여했다. 모두 부업으로 생활을 이어간다 (돈을 벌든 못벌든 언제나 음악이 본업이다). 음.악. 때문에 ‘절절매는’ 외로움과 아픔을 겪었다. 음.악. 때.문.에. 때론 짧게 때론 영원히 연인과 가족과도 헤어졌다. 음악이 고.민.이.었.고 삶.이.었.다.
한국 특유의 서사적 포크가 앨범의 밑그림인듯 하지만 브리티쉬 락의 선명한 색깔이 진하게 묻어난다. 리듬감있게 착착 감겨오는 부드러운 어쿠스틱 사운드가 어루만지다가 인디 본연의 저항의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몰아부친다.
작업실 3개를 말아먹으면서 갈고닦던 인디밴드다. 늦은 첫앨범이다.
그래서 늦.봄. 인가 보다.
II. 봄… 아직도 Spring… still
인디의 생명은 적어도 앨범이 탄생할 순간까지 상업적 자본의 입김이 작용하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바로 여기에 상업적 음악이 결코 따라올 수 없는 인디만의 장점이 있다. 투박하고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혁신과 변화를 일으키는 생명력, 잡초처럼 포기를 모르는 끈질긴 도전. 눈과 머리속을 하얗게 만들어 놓을 만큼의 새로움 (언니네 이발관의 초기 앨범과 정민아를 보라). 이것이 인디 밴드이고 내가 이들의 노래에 열광하는 이유이다.
늦봄의 첫앨범도 상업적 자본이 들어갔다면 이렇게 좋합선물 세트같은 모습은 아닐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음악들만 골라서 ‘미끈하고 착하게’ 나왔거나 유행에 맞게 곡들 곳곳을 뜯어고쳐 ‘트렌디하고 엣지’있는 모습으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늦봄의 앨범은 인디 본연의 생명력을 가지고 씹는맛이 그래로 살아있는 싱싱하고 쫀득 쫀득한 맛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대개 첫 작품이 그렇듯이 곳곳에 힘이 너무 들어 간 곳도 있고 통일되지 않은 곡들의 성격 속에서 혼란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즉 종합선물 세트와 부페 식사가 그렇듯 다양한 곡들의 포만감에 어떤 특색도 느낄 수 없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난 그들의 음악과 대화하면서 세가지 굵은 (Bold) 목소리를 발견하였다.
첫째 리듬이다. 첫 곳 “늦봄” 부터 마지막 곡 “도시소년” 까지 째즈, 포크, 브리티쉬 락, 모던 락을 넘나드는 리듬들은 한 곡 한 곡을 펄펄 뛰게 만들고 있다. 특히 “날아라 날아 올라라” 에서 가사 자체는 사회의 어두움을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톡톡튀는 리듬이 어두운 색을 걷어 내어 어두운 내용을 유쾌하게 말하는 색다른 시니컬한 색의 노래가 되었다.
두번째는 아픔과 저항이다. 앨범 전체를 가로지르며 오랫동안 음악을 하면서 겪었던 아픔과 사회 어두운 부분의 대한 고발이 가사와 가락 곳곳에 묻어난다. 특히 “수면밑으로”에서는 “민중가요”라 불리운 한국 특유의 서사적 포크 가락이 그 어느날 강변에서 보았던 새벽녁 샛별처럼 시리게 빛나고 있다.
마지막은 다양성이다. 뛰어난 한명의 리더가 이끌어가는 밴드들이 주류이고, 상대적으로 좋은 브랜드가 되기 쉽다. 그런데 밴드 모두가 노래는 한다는 뜻은 (모두가 곡에 참여한다는 말은) 밴드 멤버의 사이가 정말 좋거나, 모두 성격이 ‘완전’ 좋거나 혹은 격한 논쟁속에서 치열한 산고의 아픔을 격었다는 뜻이다.
늦봄은 비틀즈, 동물원, 여행스케치가 강렬하게 보여주고 슬슬 기억속으로 사라져 가던 밴드 본연의 모습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다양성의 정점에 첫번재 곡인 “늦봄”이 있다. 모두가 각각의 목소리로 참여한 “늦봄”은 자신의 독특한 색깔을 잘 살려서 하나를 보여준다는 다양성의 본뜻을 되새기게 하고 있는 것이다.
직장인 밴드는 점점 저변을 확대하고 있고 인디 밴드 역시 속속 주류 무대로 진출하고 있다. 음반 산업을 노래방과 인터넷이 대체하고 콘서트 역시 연령과 성별을 파괴하고 대중속으로 깊이 스며들고 있다. 즉 대중들이 수동적에서 능동적으로, 소수의 간접적 판매채널에서 다중의 직접적 판매채널로, ‘애청자’에서 ‘참여자’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더이상 주류 (혹은 전문가)와 비주류 (혹은 아마추어)를 구분하는 것도 불필요 해보인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듯 독학으로 공부한 예술가들 역시 혜성처럼 등장하고 있다. 사진의 김아타가 그렇고 건축의 안도 다다오가 그렇다. 글 머리에 언급했듯이 “늦봄” 역시 이미 ‘부업’으로 생업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음악이 그들의 영원한 ‘본업’이라고 주장하듯 그들이 가지고 온 음반 역시 “또 하나의 그저 그런 인디 앨범”이 아닌 우리가 모두가 주목할 만한 중요한 앨범이라고 보여진다. 아니 그들이 또 다른 인디 밴드의 신화가 되어 더 많은 ‘직장인’ 인디 밴드들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길 진정 바란다.
오랜 “수면 밑으로”의 긴긴 아픔을 “오바라디 오바라다”의 읇조림으로 이겨내며 “똥파리”처럼 질기게 버텨낸 그대들이여, 이제 그대들의 봄을 만끽하라. 아니 지친 삶속에서 자신의 봄을 잊고 있는 이땅의 모두에게 영원한 봄이 왔다고 노래하라!
문화평론가 M.
I. 늦음 그러나 너무 늦지 않음 late, but not too late
첫앨범이다. 밴드다. 모든 맴버가 노래에 참여했다. 모두 부업으로 생활을 이어간다 (돈을 벌든 못벌든 언제나 음악이 본업이다). 음.악. 때문에 ‘절절매는’ 외로움과 아픔을 겪었다. 음.악. 때.문.에. 때론 짧게 때론 영원히 연인과 가족과도 헤어졌다. 음악이 고.민.이.었.고 삶.이.었.다.
한국 특유의 서사적 포크가 앨범의 밑그림인듯 하지만 브리티쉬 락의 선명한 색깔이 진하게 묻어난다. 리듬감있게 착착 감겨오는 부드러운 어쿠스틱 사운드가 어루만지다가 인디 본연의 저항의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몰아부친다.
작업실 3개를 말아먹으면서 갈고닦던 인디밴드다. 늦은 첫앨범이다.
그래서 늦.봄. 인가 보다.
II. 봄… 아직도 Spring… still
인디의 생명은 적어도 앨범이 탄생할 순간까지 상업적 자본의 입김이 작용하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바로 여기에 상업적 음악이 결코 따라올 수 없는 인디만의 장점이 있다. 투박하고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혁신과 변화를 일으키는 생명력, 잡초처럼 포기를 모르는 끈질긴 도전. 눈과 머리속을 하얗게 만들어 놓을 만큼의 새로움 (언니네 이발관의 초기 앨범과 정민아를 보라). 이것이 인디 밴드이고 내가 이들의 노래에 열광하는 이유이다.
늦봄의 첫앨범도 상업적 자본이 들어갔다면 이렇게 좋합선물 세트같은 모습은 아닐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음악들만 골라서 ‘미끈하고 착하게’ 나왔거나 유행에 맞게 곡들 곳곳을 뜯어고쳐 ‘트렌디하고 엣지’있는 모습으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늦봄의 앨범은 인디 본연의 생명력을 가지고 씹는맛이 그래로 살아있는 싱싱하고 쫀득 쫀득한 맛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대개 첫 작품이 그렇듯이 곳곳에 힘이 너무 들어 간 곳도 있고 통일되지 않은 곡들의 성격 속에서 혼란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즉 종합선물 세트와 부페 식사가 그렇듯 다양한 곡들의 포만감에 어떤 특색도 느낄 수 없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난 그들의 음악과 대화하면서 세가지 굵은 (Bold) 목소리를 발견하였다.
첫째 리듬이다. 첫 곳 “늦봄” 부터 마지막 곡 “도시소년” 까지 째즈, 포크, 브리티쉬 락, 모던 락을 넘나드는 리듬들은 한 곡 한 곡을 펄펄 뛰게 만들고 있다. 특히 “날아라 날아 올라라” 에서 가사 자체는 사회의 어두움을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톡톡튀는 리듬이 어두운 색을 걷어 내어 어두운 내용을 유쾌하게 말하는 색다른 시니컬한 색의 노래가 되었다.
두번째는 아픔과 저항이다. 앨범 전체를 가로지르며 오랫동안 음악을 하면서 겪었던 아픔과 사회 어두운 부분의 대한 고발이 가사와 가락 곳곳에 묻어난다. 특히 “수면밑으로”에서는 “민중가요”라 불리운 한국 특유의 서사적 포크 가락이 그 어느날 강변에서 보았던 새벽녁 샛별처럼 시리게 빛나고 있다.
마지막은 다양성이다. 뛰어난 한명의 리더가 이끌어가는 밴드들이 주류이고, 상대적으로 좋은 브랜드가 되기 쉽다. 그런데 밴드 모두가 노래는 한다는 뜻은 (모두가 곡에 참여한다는 말은) 밴드 멤버의 사이가 정말 좋거나, 모두 성격이 ‘완전’ 좋거나 혹은 격한 논쟁속에서 치열한 산고의 아픔을 격었다는 뜻이다.
늦봄은 비틀즈, 동물원, 여행스케치가 강렬하게 보여주고 슬슬 기억속으로 사라져 가던 밴드 본연의 모습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다양성의 정점에 첫번재 곡인 “늦봄”이 있다. 모두가 각각의 목소리로 참여한 “늦봄”은 자신의 독특한 색깔을 잘 살려서 하나를 보여준다는 다양성의 본뜻을 되새기게 하고 있는 것이다.
직장인 밴드는 점점 저변을 확대하고 있고 인디 밴드 역시 속속 주류 무대로 진출하고 있다. 음반 산업을 노래방과 인터넷이 대체하고 콘서트 역시 연령과 성별을 파괴하고 대중속으로 깊이 스며들고 있다. 즉 대중들이 수동적에서 능동적으로, 소수의 간접적 판매채널에서 다중의 직접적 판매채널로, ‘애청자’에서 ‘참여자’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더이상 주류 (혹은 전문가)와 비주류 (혹은 아마추어)를 구분하는 것도 불필요 해보인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듯 독학으로 공부한 예술가들 역시 혜성처럼 등장하고 있다. 사진의 김아타가 그렇고 건축의 안도 다다오가 그렇다. 글 머리에 언급했듯이 “늦봄” 역시 이미 ‘부업’으로 생업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음악이 그들의 영원한 ‘본업’이라고 주장하듯 그들이 가지고 온 음반 역시 “또 하나의 그저 그런 인디 앨범”이 아닌 우리가 모두가 주목할 만한 중요한 앨범이라고 보여진다. 아니 그들이 또 다른 인디 밴드의 신화가 되어 더 많은 ‘직장인’ 인디 밴드들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길 진정 바란다.
오랜 “수면 밑으로”의 긴긴 아픔을 “오바라디 오바라다”의 읇조림으로 이겨내며 “똥파리”처럼 질기게 버텨낸 그대들이여, 이제 그대들의 봄을 만끽하라. 아니 지친 삶속에서 자신의 봄을 잊고 있는 이땅의 모두에게 영원한 봄이 왔다고 노래하라!
문화평론가 M.
# by | 2009/10/09 19:30 | 문화일기 | 트랙백 | 덧글(3)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우연스럽게 접해서 들었는데,,연신 듣고 있네여~넘넘 좋아요!!!